일련의 와인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는 간혹 점수제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는다. 특히 보디감이라는 부분에서 좀 혼란스러워 하는데 가령 보디감 1~5점 이렇게 되어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할까?
만약이 기준대로라면 소비뇽 블랑은 0점이 되어야 할 것이고 호주의 진한 쉬라즈는 5점을 받아야 할 것이다.
즉, 종류와 품종적 특성을 따져야 하는 관점에서 보디감이라는 것은 그렇게 좋은 평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. 나는 개인적으로 와인을 바라볼 때 이를 좀더 세분화해서 구조감, 보디감, 밀도감 관점에서 나누어서 접근하는데 다음과 같은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기준으로 바라본다.(즉,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.)
구조감: 포도 알갱이 하나를 포도송이에서 뜯어낸다고 생각을 해 보자. 그리고 그 연결되었던 부분을 생각해보자. 집에서 포도를 먹다 보면 그 뜯어진 곳이 매끈한 포도도 있고, 껍질이 진무른 것도 있고간혹 이물질이 묻어있는 것도있다. 이 부위가 매끈하게 뜯어지는 포도는 탱글탱글하며 씹을 때에도 껍질 부위가 단단히 지탱한다. 이런 외연적인 특징을 구조감이 전해준다. 와인의 구조감을 이야기 할 때 혹자는 품종간의 밸런스, 시음 적기의 안정감 등도 이야기하나 나는 그포도가 얼마나 온전하게 수확되고 관리가 되었는지에 따라서 보는 측면이 있다.
보디감: 말 그대로 묵직한 느낌이다.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인데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에서 많이 관찰될 수 있다.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두껍냐 두껍지 않냐 하는 느낌이다. 소비뇽 블랑의 경우에는 극도로 얇다. 너무나 하늘거린다.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호주의 진한 쉬라즈(요즘은 많지 않지만)의 경우 엄청나게 보디감이 강하다. 그런데 이 보디감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. 이 기준대로라면 소비뇽 블랑의 점수는 형편없이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.
밀도감: 꽤 어려운 개념이기는 하나 보디감이 있다고 밀도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. 마치 물 위에 보디감이라는 강철배가 떠 있는데 그 아래는 공허하고 싱거운 느낌을 주는 경우를 들수있다. 이 밀도감을 비교하는 좋은 방법은 고가 와인과 저가 와인을 비교해서 시음해보는 것이다. 같은 포도원은 비슷한 특징을 지니기 때문에 다른 포도원의 것으로 나누어서 해 본다. 밀도감이 너무 강하면 와인을 이해하기가 어렵다. 일반적으로 어린 와인에서도 많이 드러난다. 밀도감이 과하면 아로마의 힘이 약하다. 그렇기 때문에 구조감이 좋은 화이트가 밀도감마저 좋아버리면 아로마 를 피우기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. 온도를 좀 올리거나 브리딩도 많이 해야 한다. 트레이드 오프가 있는 개념이 밀도감이다.
이 세 개념으로 몇몇 포도품종이나 와인을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. 대표적인 것이 비욘디 산띠 같은 클래식 스타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(Brunello di Montalcino)를 들 수 있다. 비욘디 산띠(Biondi Santi)의 경우 색상은 희멀건 투명한 빛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. 원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색이 그렇다. 아로마는 섬세하다. 그러나 입안에 넣는 순간 미디엄라이트 보디감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구조감과 밀도감을 보여준다. 밀도감이 강하다 보니 브리딩이나 디켄팅을 6시간 이상 해 주어야 아로마가 피어난다. 그러나 보디감은 미디엄 라이트다.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아로마가 피어날 것이다.
구조감을 잘 보기 위해서는 잘 만든 리슬링이 좋다. 분명히 가녀리고 알콜도 세지 않는데 숙성은 20~30년은 우습게 넘기는 리슬링이 부지기수다. 그 와인들은 분명히 생동감이 있다. 그러나 보디감은 매우 낮다. 밀도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. 그래서 아로마는 화사하고 기분이 좋다. 부족한 산도 부분은 당도가 어느정도 지탱한다. (물론 잘 만든 포도원은 대단한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를 보여준다.) 특급 소비뇽 블랑도 구조감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. 특히 후리울리 지역의 소비뇽 블랑을 마셔보면 정말로 깊이 있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. 오래전 수입 되었던 론코 델 녜미즈(Ronco del Gnemiz)와 같은 부띠끄 포도원들의 와인들이 이런 면을 잘 보여준다.
마지막으로 오래전에 과일 폭탄이라는 개념의 와인들이 많았다. 이 때문에 평론가들 사이에도 말들이 많았다. 이 와인들은 보디감과 밀도감이 매우 강해서 그 밀도감을 비집고 터져나오는 과실의 느낌을 많이 주었다. 주로 미국의 컬트 와인을 시도하는 신생 포도원들, 그리고 호주에 서 뜨거운 태양 아래 최대의 응집도를 끌어내는 포도원들이었다. 그러나 그 와인들의 구조감은 많이 약한 경우가 많았다. 최근에도 고가의 와인들 중에는 보디감과 밀도감은 있으나 구조감은 많이 부족한 와인들이 많 다. 이런 와인들은 브리딩 후에 뭔가 보여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. 구조감이 약할 때에는 복합미가 떨어질 때도많다. 그래서 브리딩을 해도 계속 같은 향만 난다. 좋은 고급 와인은 브리딩 할수록 계속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만큼 구조에 여러 층위(layer)가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.
최근에 많이 각광받고 있는 내추럴의 경우에는 보디감과 밀도감은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 다.인위적이지 않으니 말이다. 그러나 포도 자체의 자생력이 있어서 구조감은 상당히 좋다. 그래서 입 안에 들어가면 편안한 느낌을 준다. 어느 한쪽을 강화하기 위한 인위적 노력이 잘 안느껴진다. 그래야 정상일 것이다.
종합해서 살펴본다면 저 각각의 요인에 다시 산도, 당도, 타닌, 아로마, 피니시라는 요인들이 엮여서 다중 복합 방정식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. 밀도감있는 타닌과 구조감있는 타닌은 다르며, 밀도감있는산도와 보디감있는 산도, 구조감있는 산도 역시 달라야 할 것이다. 이 각각의 요소는 서로간에 영향을 주어 매우 묘한 느낌의 경험을 와인 애호가들에게 선사한다고 생각한다. 오늘부터 와인을 마실 때 이러한 느낌을 조금씩 느껴본다면 좀 더 와인 생활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.
정휘웅 칼럼니스트
2005년 이후 네이버 와인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닉네임 ‘웅가’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. 9천 건에 가까운 자체 작성 시음노트를 보유하고 있으 며,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. 김준철와 인스쿨에서 마스터 과정과 양조학 과정을 수료하 였다.IT분야전문직업을가지고있으며와인분 야 저술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. 2013년부터 연 초에 한국수입와인시장분석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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